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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료실
작성자 황석용
작성일 2003-12-02 21:27
분 류 황석용
ㆍ추천: 0  ㆍ조회: 3334      
삼상강해 5 (말씀이 희귀한 때) 3:1-4:1a
말씀이 희귀한 때

삼상 3:1-4:1a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청년들이 교회에 불만을 품고 다 빠져 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가대를 열심히 하던 청년들도 교사들도 다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반 이상의 성가대와 교사가 교회를 빠져 나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모두 걱정을 했습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다른 여느 교우들도 이제 누가 청년들 하던 일을 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실제로 몇 주 동안 교회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성가대도 텅 비어 있었고, 주일학교도 합반을 하기 일수 였습니다. 청년들이 교회의 상당 부분의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무엇보다도 컸습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면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 사이에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나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남편 때문에, 나는 직장이 바빠서 교회 일을 할 수 없다고 꼬리를 내리던 장년들이 하나 둘 성가대와 교사의 자리를 채우기 시작을 했습니다. 뺀질 뺀질 거리며 교역자들이 아무리 권면을 해도 말을 듣지 않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하나 둘 빈 자리를 채우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같으면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청년들이 모두 빠져 나갔을 때 교회가 큰 시험에 빠질 것처럼 보여졌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서서 교회 일들을 감당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 교회는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띄기 시작을 했고 뒷짐을 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헌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새로운 인물이 출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뒤 이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 엘리의 아들들이 불량배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이것을 지켜 보는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을 것입니다. 마치 청년들이 빠져 나간 성가대석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지어야만 했던 교우들처럼 자신들의 암담한 미래에 대해서 한숨 지었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있는 것일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들이 제사장이 된다면 우리를 과연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많이 괴로워 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어두움이 짖게 드리워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끊고 상실감에 사로 잡혀 있을 때 하나님은 저 만큼에서 일어 나셔서 무엇인가를 하시기를 시작하시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실 때는 아무도 하나님의 움직임에 대해서 눈치를 체지 못했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 그래 그것이 하나님의 움직이심 이구나 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시선을 집중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처음에는 A라는 사람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다 비추어져서 그가 주인공인 줄 알고 그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저기 저 어두움 속에서 일어나셔서 뭔가를 하고 계십니다. 스포트라이트가 그 쪽으로 비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이 주인공일 것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은 어두움 가운데서 자신을 감추시면서 움직이십니다. 그러다가 점점 A, 를 향했던 스포트라이트는 어두워져 가고 하나님 주변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리둥절합니다. 어! A라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저분 하면서 하나님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무엘상 1장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한나의 마음을 움직여 아들을 갖기 위한 기도를 했을 때, 아무도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그의 기도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범죄 함 때문에 낙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엘리를 향했던 스포트라이트가 방향을 바꿔 사무엘에게로 향하기 시작을 합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어! 저게 누구지…? 엘리와 그 아들들이 주인공이 아닌가? 하면서 의아해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하나님께서는 무대 위로 사무엘을 등장시키면서 모든 것의 중심에 사무엘이 서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오늘 본문이 시작 될 때 사무엘에 대해서 무엇이라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냥 아이 사무엘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기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 사무엘…,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끝 날 때 즈음의 말씀을 보도록 하십시다. 1절 말씀을 볼까요? “……………………” 어떻습니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사무엘에게 집중하죠?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사무엘…, 저는 저절로 등장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이 사건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이 사건의 모든 감독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어두움의 때에 개입을 하셔서 사람들을 움직이시고 다시금 사람들 마음에 소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비록 우리가 사는 이 시대, 공의 와 정의 가 상실되어 가고 있는 사회, 그래서 소망이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 간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직 하나님의 일 하심에 대해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 않아서 사람들은 관심도 갖기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시던 그 시절…,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은 바로 이 시절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이것이 이야기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시절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살펴 보면 이스라엘의 암흑기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것과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 할 때는 영적인 부흥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할 때는 반대 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일생에도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일생 가운데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언제 였는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아내 사라의 말을 귀담아 듣고 사라의 종 하갈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죠. 사라와 아브라함이 세운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침묵하신 줄 아십니까? 함께 성경을 좀 찾아 볼까요? 창세기 16:16절입니다. 거기 보면 아브라함의 나이가 나오죠? 얼마로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86세입니다. 그런데 17: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자 여기에도 아브라함의 나이가 나오죠? 몇 세죠? 그렇습니다. 99세입니다. 16:16절과 17:1절 사이에 몇 년의 갭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13년의 갭이 있습니다. 왜 성경은 이 기간 동안 아브라함의 생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을까요? 이 때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침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저자도 저의 생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개인에게 있어서도 영적인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 하심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여러분이 열심히 교회에 출석도 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영적인 암흑기에 접어 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달리 이야기 하면 여러분은 지금 습관적으로 또 때로는 책임감에 사로 잡혀 교회 출석도 하고 봉사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봉사, 이것은 하나님께 열납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왕 우리가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열납 되고 드려 질 수 있는 그런 멋진 헌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 보십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말씀하시는 것을 언제 느꼈는지…, 언제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지…, 이 경험이 멀다면 여러분은 지금 영적인 암흑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펼쳐 들기 싫고 말씀을 보면 졸음이 온다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깨어 나십시오. 그리고 훌 훌 털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노력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에 말씀하심을 느낄 수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던 때는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를 만홀이 여기고 행패를 부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러한 일이 사무엘의 등장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하는데요. 여러분 보십시오. 사무엘이 어디서 생활을 했죠? 그렇습니다. 성막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이 성막에는 누가 있었죠? 그렇습니다. 바로 엘리의 아들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무엘에게 있어 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즉, 모델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모델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그것을 따라 가는 사람들 역시 제대로 되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델이 잘 못 되어 있으면 그것을 따라 가는 사람들 역시 잘 못 되어질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종종 제가 밥을 먹다가 픽 하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아들 녀석이 간혹 제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앉아 있는 폼이나 제가 먹는 반찬, 제가 하는 헛 기침 뭐 이런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이것 만이 아닙니다. 간혹 동네 아이들을 불러다가 놀 때도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말하는 말투가 영락 없는 저의 모습입니다. “이 녀석이”라든지, “어허” 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제가 제 아들에게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무엘의 모델은 엘리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가끔 이 아들들은 사무엘에게 놀러 와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또 자신들이 하는 일에 함께 동참해 볼 것에 대해서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무엘은 이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사무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이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가장 어두움의 시절인 사사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있기를 힘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역시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우리의 신앙적인 가치관을 흔드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아도 이런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키면 수 많은 채널들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키면 수 많은 사이트들이 우리의 생각을 흔들어 놓습니다. 잘 못된 본은 저 세상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영적으로 바르지 선배들이 바르지 못한 본을 보이며 살고 있습니다. 학교, 직장 이러저러한 곳에서 먼저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잘 못된 본을 보이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 누구도 그러는데 뭐…, 라고 말 하면서 잘 못된 본을 따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무엘 적인 삶이 아닙니다. 아니 사무엘 적인 삶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적인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두워 져 가는 세상 속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그런다고 해서, 누구 누구가 그런다고 해서 나도 그런다는 생각을 버리십시다. 다 그런다고 할 지라도 나는 그러지 않아야 겠다는 결심, 각오, 이런 것들이 여러분 마음에 가득차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본문을 상당히 회화적으로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함께 2,3절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구절을 읽는 순간에 그림이 그려 지십니까? 그렇죠?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지죠. 바로 저자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성경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조기법을 통해서 읽는 독자들이 쉽게 본문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엘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처소에 있습니다. 사무엘은 요? 네,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워 있습니다. 엘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그렇습니다. 점점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요? 네,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을 때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 이 장면을 머리 속에 다시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엘리의 침소,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둡고 침침한 장면이 연상이 됩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있었던 곳은요? 그렇습니다. 등불이 켜져 있고 하나님의 법괘가 있고, 그리고 그 옆에 누워 있는 사무엘이 연상이 됩니다. 1절은 누구와 연결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렇습니다. 엘리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어두움이 짖게 드리워 져 있는 모습이죠.

우리는 이 모습에서 서서히 두 사람이 새대 교체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엘리는 역사의 무대 뒤로 사무엘은 역사의 무대 중심으로 등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가 엘리 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사무엘이 사무엘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가 엘리 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 침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문제를 야기 하고 있는 때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말씀이 희귀해 진 시대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어서야 합니다. 아니 사무엘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 그 자리에 엘리가 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엘리는 이런 영적인 어려움의 시대에 그 역시 침소에 깊이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무엘은 어디에 있었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엄마의 품 안에 누워 있었어야 했었습니다. 장난감을 끌어 안고 놀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가 있어야 했던 바로 그 자리,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사무엘이 사무엘 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 시간 여러분께 한 번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계시는 자리는 어디인지를 말입니다. 어디입니까? 여러분, 성도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있어야 할 자리,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각자 저마다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자리 직장에서의 자리, 또 교회 안에서의 자리, 이 자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나는 과연 내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굳건하게 잘 서 있는지를…,

여러분 보십시오. 2,3절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셔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결과죠. 그가 하나님의 법괘 옆에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함께 4절 말씀을 보십시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죠? 하지만 이 말씀에 대해서 사무엘은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 번씩이나 엘리가 자기를 부른 것인 줄 알고 엘리에게 달려 갑니다. 이것에 대해서 함께 7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 뭐라 이야기 합니까? 그렇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무엘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바로 뒤에 설명 되어 지고 있죠. 즉,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마 오래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험이 오래 되지 않았다면 사무엘이 자기에게 찾아 왔을 때 즉각적으로 이야기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죠. 세 번씩이나 찾아와 문의를 하자 그제서야 오래 된 서랍 속에 자신의 경험을 꺼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이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엘리 집안의 멸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입장에서 참 난감한 이야기 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의 스승 격인 엘리 집안의 멸망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만 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이 때 사무엘의 마음에 대해서 15절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사무엘이 어떠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두려워 했습니다. 참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제자가 스승의 멸망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만 하는…, 하지만 저는 사무엘에게 이런 마음만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에게 또 다른 마음, 그러니까 자신을 부르시고 자신을 세워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생각 했을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소명 감을 가졌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아마 사무엘은 그 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엘리 집 안에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레임…, 이런 저런 것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사무엘은 그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엘리는 궁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밤에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사무엘에게 캐 묻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말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엘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죠? 그렇습니다. 아이 사무엘,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엘리는 이 어린 사무엘에게 찾아 가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더냐고 묻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모습입니까?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일은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자로 여기는 것은 나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큰 자로 여기는 것은 나이와 상관 없이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을 큰 자로 여기십니다. 우리 나라 사회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이입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나이가 많은 분들에 대해서 존경심을 가지는 것, 이것은 아름다운 관습이며 장점입니다. 하지만 나이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나이로 밀어 붙이는 것, 이것은 잘 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나이가 아닙니다. 아니 나이만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학력도 아닙니다. 건강도 아닙니다. 재력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는 마음, 하나님께 나아가는 순수한 정열, 이런 것을 귀하게 보시고 이런 사람을 쓰시며 이런 사람을 선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없는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돈도 없고 재능도 없고, 학력도 없는데…, 이런 생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지식 보다 뛰어나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재정 보다 더 많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재능보다 더 하십니까? 하나님은 이런 것은 얼마든지 붙여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만 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학자를 붙여 줄 수도 있고, 재정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모든 것을 붙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여러분의 마음,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핑계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 보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씀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들어 가시며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런 사무엘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세우시고 저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자 함께 19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무엘이 하는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에게 함께 하심으로 사무엘을 높이 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어린 사무엘, 저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어린 사무엘의 약점을 극복해 가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나의 약점을 극복해 가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극복해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약점, 그것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바로 서면, 여러분의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를 원하시면 하나님께서 그것 책임 지실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 아니고 하나님의 몫입니다. 저는 토저의 임명서약을 참 좋아 해서 가끔 읽습니다. 거기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의 하나님, 저는 제 연약함이나 이 일에 적합하지 못한 저 자신을 한탄하며 시간을 낭비하진 않겠나이다. 그 책임은 제가 아닌 주께 속해 있나이다.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알고 있다.  나는 너를 임명하였다. 나는 너를 거룩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셨고 또 너는 내가 보내는 곳으로 가서 내가 명하는 것을 전하라고 명하셨나이다. 제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과 논쟁하며 아버지의 지엄하신 택하심에 이의를 제기 하겠나이까? 그 결정은 제가 아니라 아버지께 달렸나이다. 주님, 그렇습니다. 제 뜻이 아니라 주님 뜻을 이루 시옵소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약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인해 너무 위축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기꺼움을 헌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더욱더 크게 하십니다. 함께 20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단은

그렇습니다. 끝에서 끝까지라는 말입니다. 즉, 모든 이스라엘이 이제 사무엘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 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태어나 그 어두움을 환히 비추이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부정적인 삶의 영향을 받을 만한 것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 시대를 감당하는 멋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멋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역시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을 향하던 마음을 접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 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있어야 할 영적인 자리, 그 자리를 지켜 보십시오. 여러분도 사무엘처럼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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