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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료실
작성자 zeja
작성일 2004-02-05 10:29
ㆍ추천: 0  ㆍ조회: 5074      
삼상강해7(5:1-12)"블레셋의 어리석음"
블레셋의 어리석음

삼상 5:1-12
여러분 이 그림을 잘 아시지요?(눈 위의 예수님 얼굴) 한 때 이 그림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아서 이 그림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당한 고민을 하게 했었는데요? 어떠세요? 여러분, 여러분은 이 그림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으시겠어요? 저는 이 그림에 대해서 유감이 있습니다. 제가 갖는 유감은 좀 전에 말씀 드렸던 것과 같이 이 그림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허무 맹랑한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이 그림에 대한 이런 설명 때문입니다. 이 그림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눈 위에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찍은 사진” 정확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식의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 글이 성경적인 것일까요? 다시 말씀 드리면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 중에도 이런 기도 한 번쯤은 해 보시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이런 말을 덫 붙여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한 번만 보여주시면 더욱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겠습니다. 라든지, 제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갖겠습니다. 하는 이야기와 함께 말입니다. 물론 신앙이 어렸을 때는 이런 식의 기도를 한다는 것, 이해 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신앙이 어느 정도 성장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도를 한다는 거, 이거 참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 문제냐 구요? 신앙생활을 잘 하고 못하고, 구원을 받고 못 받고는 이런 것을 보고 안 보고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가 구원 받기에 충분, 그리고 신앙생활을 잘 하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가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기도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오해, 그릇된 생각을 하는데 이 그림이 일조를 했기 때문에 저는 이 그림에 대해서 유감을 갖습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한 번 본다면 예수님을 더욱더 확실하게 믿을 텐데…, 대단한 기적이나 이적을 한 번 체험한다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텐데…, 라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과연 그러할까요? 대단한 기적이나 이적을 체험하면 신앙을 갖고 또, 예수님을 직접 뵈면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까요?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인 대답을 합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지요” 라든가,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라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는걸요.., 도움이 되면 되지 않아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처럼…, 이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이런 생각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하나님의 말씀 외에 또 다른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져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낳은 후유증 중에 하나가 신비주의입니다. 말씀을 제쳐 두고 신비한 것만 찾아 다니는 신비주의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것은 신앙생활의 득 보다는 잃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말씀을 제쳐 두고 다른 것을 찾게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은 앞으로 이런 기도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이런 신비한 것,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예수를 안 믿던 사람들이 믿게 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도 부정적입니다. 왜냐구요? 저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결론을 내려 보고자 합니다. 자 이제 말씀을 살펴 가면서 이 문제를 풀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인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 말씀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큰 전과를 올린 군사들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죠? 하나님으로 대변 되는 하나님의 궤를 가져 왔으니까 말입니다. 이것을 이들의 사고 그러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블레셋 사람들의 사고로 보면 하나님을 포로로 잡아 온 것과 같은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 전과를 올리고 돌아 오는 블레셋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언약궤 어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뭇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마음을 녹게 했던 것 아닙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 생각해 보았던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에게 상당한 공포심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것이었죠. 그런데 그것을 물리친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리품으로 가지고 돌아 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흐뭇하고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제가 제 아들 녀석하고 자전거 시합을 해서 이기는 것과 프랑스의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과 경기를 해서 이기는 것과 기쁨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가 열심히 자전거를 타서 그 결과로 세계 최강이라고 일컬어 지는 루이 암스트롱을 이긴다면 얼마나 큰 감격이 있겠습니까? 대단하겠죠.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역시 대단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환영 플래카드가 내 걸리고 만국기가 펄럭 였을 것입니다. 거리 곳곳에는 환영 인파가 나와 있었을 것이며 수 많은 취재진들이 여기 저기서 프랫쉬를 터트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 뿐이겠습니까? 밴드가 동원되어 이런 곡이 연주 되겠지요. 따다다단따 따다다단~ 하고 말입니다. 이 멋진 개선행진이 있은 후 이들은 법궤를 신전 안에 다곤 곁에 둡니다. 이것은 당시의 관례인데요. 당시에는 전쟁을 통해서 신을 빼앗으면 그 신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전에 갔다 둠으로써 자신들의 신과 더불어 빼앗은 신의 힘도 빌리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다곤의 힘과 더불어 하나님의 힘도 함께 빌려 보려고 했던 것이지요. 아마 이 순간 이들은 뿌듯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의 신이 세계 최강이라고 일컬어 지던 여호와를 이겼으니 말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대한 대단한 능력을 확인하는 날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 거치는 것은 없다” 하고 말입니다.

참 어리석은 모습이죠? 신을 인간이 빼앗기도 하고 뺏어 오기도 하니 말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신의 힘을 빌려 자신들이 여호와를 이겨 빼앗아 왔다고 생각 하겠지만 참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인간에 의해서 빼앗기기도 하고 빼앗을 수도 있는 신, 그런 신을 왜 섬겨야 하는지…, 또 모르겠습니다. 신끼리 전쟁을 벌여서 진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이건 신끼리 벌인 전쟁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이들이 섬겼던 신들, 이 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신전 안에 앉아 있는 일 그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지요. 이런 것이 나가서 전쟁을 벌인다는 것, 그것 참 우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신을 섬기고 이 신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참 우습죠? 이것이 인간의 모습 이예요.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그래서 인간 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것을 신이랍시고 섬기는 인간…,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랍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도 이런 것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 나라도 이런 미신적인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가슴 속에 부적을 넣고 다닌다든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형상에 절을 하고 섬기는 일등 말입니다. 여러분 수 십만원 때로는 수 백 만원이 넘는 부적도 있다 하죠.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 역시 나와 똑 같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무서워서 나한테 가까이 하지 못하는 잡귀라면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예요. 그런데 그런 것을 사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돈을 들인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아무튼 이들은 어리석게도 자신들이 신을 빼앗아 왔다고 생각하고는 그것을 신전에 안치를 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그날 밤 승리의 축배를 들기 위해 축하연을 열었을 것입니다. 여기 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리고 기생들의 춤사위가 이어지며 여기 저기서 자신들의 전과를 이야기 하며 떠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으며 앞으로 이 하나님의 궤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전쟁이 치루어 진다 할지라도 승리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떠벌렸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체 말입니다. 사실 이들이 언약궤를 자신들의 신전에 놓은 것은 트로이의 목마를 흡족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성안으로 모셔 드린 트로이 사람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 아시죠? 그리스가 트로이를 치려고 군사들을 몰고 갔을 때 트로이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독화살을 쏘아 올려도 저들은 나무 뒤에 숨어 버렸으며, 성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 가도 돌멩이로 공격을 하는 바람에 성을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사상자만 날 뿐 트로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때 누군가가 꾀를 내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잘 훈련된 군사들을 넣어 두었다가 저들이 야밤을 틈타 저들이 성문을 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군사들은 아주 커다란 목마만 만들어 놓고 트로이 사람들에게 퇴각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하죠. 트로이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이 커다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입니다. 그 날 밤 목마 안에 숨어 있었던 군사들은 밖으로 나와 성문을 열고 전쟁을 벌입니다. 그것과 때를 같이 해서 그리스 군사들도 다시 돌아오지요. 결국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트로이가 함락 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의 언약궤 바로 이 언약궤가 이러한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은 축배를 들고 전과를 자랑하고 껄껄 대고 웃었지만 결국 이 일로 인해 엄청난 일들을 경험하고 말지요. 하나님께서 볼 때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이겠습니까? 자신들에게 큰 재앙을 줄 것을 얻어 놓고서도 그것이 좋다가 축배를 들고 껄껄 웃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요. 문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망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얻은 양 즐거워 하고 웃고 떠드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복인 것 같았는데 지나 놓고 보니까 트로이 목마와 같이 되었던 일들이 있으셨죠? 그것도 모르고 감사까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이 어두워져 있으면 이것이 나의 인생이 득이 될 것인지 해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감을 못 잡을 수 있습니다. 그저 내 인생에 뭔가가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이 깨어 있으면 이런 것을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저는 여러분들이 삶을 사시면서 그저 내 인생에 무엇인가 하나가 더 늘었다는 사실 때문에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표면적인 것만을 바라 보고 즐거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말로 이야기 한다면 당장에 주는 유익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장에는 유익인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언약궤와 트로이의 목마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일에 대해서 심사 숙고 해 보아야 합니다. 저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그저 즐거워 하고 그저 기뻐할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우리의 삶의 특징에 대해서 바울이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고후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로 보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우리 사랑하는교회 교우들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트로이의 목마인지 아닌지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바른 것을 바르게 구분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이 언약궤로 인하여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를 함께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함께 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자 아스돗 사람들이 언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튿날 일찍이 일어 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이 본문은 아스돗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 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면 뭐 잠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지요. 라던지…, 뭐 그런 것까지 다 따지세요 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아무런 필요도 없는 것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이 글을 적고 있는 저자의 입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본문을 기록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뭔가 생각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4절도 예외 없이 이들이 일찍 일어 났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좀 전에도 제가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들은 그 전날 전쟁 승리로 인한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마치고 모처럼 만의 휴식을 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늦잠을 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이들이 일어 났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왤까요? 그렇습니다. 궁금증이 생긴 것입니다. 즉, 신전에 놓아 두었던 언약궤가 잘 있나 없나 하는 생각을 갖고 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 났던 것입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들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자신들의 신이 더욱더 능한 분이라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혹 언약궤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하면서 살펴 보기 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죠?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신인 다곤이 땅에 엎드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여호와의 궤 앞에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곤이 여호와의 궤에 절을 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깜작 놀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이런 경우 이것을 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연”이라고요. 즉, 어찌 어찌 하다 보니까 이런 일이 벌어 졌겠지…, 하는 정도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신상을 일으켜 세우죠. 내일 아침에는 별 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렀습니까? 이런 경우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하지만 속 마음은 복잡하게 전개 되지 않습니까?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 안 그런 척 하지만 속으로는 별의 별 생각 다하는…, 바로 이들이 그러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4절에서 일들이 다시 일찍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에서 그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죠. 왜 이들이 일찍 일어 났겠어요? 그렇습니다. 호기심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아무일 없는 것처럼 해도 저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바로 이 호기심이 이들의 잠을 설치게 하고 이른 아침 일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자 이들이 일찍 일어 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 나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제 보다 더 처참한 모습으로 다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진 체로 말입니다. 이 일이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준 것처럼 보입니다. 함께 5절 말씀을 읽도록 하죠. “…………………………” 어떤 일이 벌어 졌습니까? 그렇습니다. 다곤이 넘어졌던 그 자리를 밟지 않았죠. 얼마나 이 일이 충격이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 졌겠습니까? 그런데 일이 여기서만 끝났던 것이 아닙니다. 함께 6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 어떤 일이 벌어지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중히 더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이 말은 무섭게 내리 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종이 퍼지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아스돗이 술렁이기를 시작합니다. 함께 7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 자 보십시오. 이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문제의 근원을 어디로 지목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자신들 중에 있는 이스라엘 신의 궤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문제의 근원을 바로 지목했죠? 그렇다면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8절을 읽습니다. “…………………” 어떻게 처리하죠? 그렇습니다. 회의를 소집하죠. 그리고는 의논을 하죠. 어떤 결론을 내립니까? 네, 이스라엘 신을 가드로 옮겨 갈 것에 대해서 결의하죠. 여러분 보십시오. 이들의 결론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습니까? 이들이 내린 결론이 옳아 보입니까? 잘 못 된 것으로 보입니까? 잘 못 되었죠? 그럼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더 강한 신, 참신이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참 신을 자신들의 진 중에서 몰아 내고 있습니다. 이들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말씀을 살펴 보도록 하죠. 함께 9,10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궤가 어디로 가죠? 그렇습니다. 가드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독종이 납니다. 그래 이번에는 이 궤를 에글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에글론 사람들이 한사코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10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자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이 소문, 그러니까 언약궤가 가는 곳에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 난다는 소문이 곳곳에 퍼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일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도 알게 되어 진 것이지요. 그래 이들은 손을 휘 저으면서 자신들에게 가져 오지 말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온 블레셋 사람들이 누가 참 신 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 다시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이 난관을 해쳐 나가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겠습니까?

11절을 보면 블레셋 진영에서 큰 회의가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1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마 지금 같으면 국가비상회의가 소집 될 만 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중지를 모읍니다. 자 어떤 중지를 모읍니다? 그렇습니다. 궤를 본처로 돌려 보내는 일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여쭈어 봅시다. 이들이 내린 결론 어떻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이럴 때 어떤 결론을 내리겠습니까? 이들이 이럴  때 해야 할 일은…,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참 신이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에 들어 온 궤를 내어 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환영하고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이지요. 여러분 보세요. 이것은 가정이지만요. 만약 이 때 이들이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블레셋 사람이…, 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문제입니까? 보세요. 기생 라합, 그는 이방인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조상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이런 이방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 될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들은 그 행운을 발로 차 버리고 있습니다. 그야 말로 굴러온 복을 차 버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을 드렸던 것 기억 하실 것입니다. 기적과 이적, 그것을 볼 수 있다면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인가? 기적과 이적은 우리 신앙을 강화 시키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내리 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누가 참 신인가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야기 해주는 바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고집이 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삽니다. 재미 있는 것은요. 사람은 이 신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알카에다에 의해서 테러를 일으켰던 사람들…, 저들 역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신념 그 신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사람에게 있어 신념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념, 이 신념을 잘 바꾸려 하지 않아요. 그만큼 고집이 센 사람들 이예요. 오늘 본문의 블레셋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의 특성을 그대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 체계, 이것을 바꾸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들은 굴러온 복을 차 버리고 말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역시 잘 못된 신념, 그러니까 예수를 믿기 전의 형성된 가치관 이런 것으로 인해서 신앙이 방해 받을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끝까지 우기는 경우가 허다해요. 저도 참 그럴 때가 많아요.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자꾸 죄 된 길로 가려고 해요. 바로 죄 된 본성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셔서 그것은 아니라 고 하심에도 잘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그것이 복이고 그것이 내 인생에 유익인데도 우리는 구지 엉뚱한 길 가지 말아야 할 길 그 길을 우기며 가려 하죠. 우리가 이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일단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해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 생각과 달라도 따라가겠다는 생각 말이 예요. 사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미래를 더 잘 아시잖아요. 내 눈은 근시안이라서 먼 것을 잘 보지 못해요. 그것도 나타나는 현상 밖에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죠. 하나님은 내 인생의 미래, 그 문제의 내면적인 문제까지 다 꾈 뚫고 계세요.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고 나를 더 유익 되게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해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죠. 또 필요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예요. 내가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롭게 듣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향해 무엇이라 말씀하실 지에 대해서 주의를 집중하고 들어야 합니다. 내 모든 영적인 촉각을 곤두세워 가면서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인생의 요소 요소에서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말씀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그 사람은 행운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은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살기에 바빠서 또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해서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을 포기한다면 오늘 본문의 블레셋처럼 행운을 잡을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한 번 들어 보도록 하십시다. 여러분 요즘 복권이 한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데요. 마침 모란역을 지나가다 복권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가 복권 사는 일을 하지 못하고 지나 갔어요. 그런데 신문에 보니까 그 주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성남 사람이예요. 기분이 묘하겠죠. 그리고 그 날 아침 모란 역을 지나는데 내가 복권을 사려던 바로 그 가게에 제 몇 회 복권 당첨된 곳 이렇게 써 붙여 놓은 것이예요. 기분 어떻겠어요. 묘하겠죠. 아, 이거 내가 굴러온 복을 차 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예요. 우리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굴러온 복을 차 버리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복을 발로 걷어 차며 사셨나요?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동의 삶은 이런 삶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향해 복된 말씀을 하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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