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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료실
작성자 노재석
작성일 2007-01-12 23:02
홈페이지 http://sbjac.com
분 류 기타회원
첨부#1 행172234.hwp (0KB) (Down:55)
ㆍ추천: 0  ㆍ조회: 3296      
사도행전17장22-34절. 하나님과 인간-아레오바고에 서서
사도행전 17장22-34절. 하나님과 인간. (아레오바고에 서서)
본문에 나오는 (아레오바고)는 법정으로도 사용되기도 하고, 연설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전후 문맥을 보면 (사법 처리절차⤳고소, 검사, 변호사, 재판장, 판결)가 전혀 없다는 것은 바울이 죄수로 잡혀 간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아레오바고 오른 쪽 높은 곳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는데, 거기는 아테네 여신에게 바쳐진 (파르테논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여신상을 중심으로 해서 아테네 성에는 우상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한번 쓰~윽 둘러보고, 멀리 오른 쪽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도 올려다 본 다음에 첫 말을 꺼냈습니다. (22-23절)을 그런 분위기를 연상하면서 한번 읽어볼까요?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처음부터 그들을 비판하면서, 소위 까면서 시작하지 않는 바울을 보세요. 저는 이게 부러웠었습니다. 저의 젊었을 때의 고민이 뭐냐 하면 ‘왜 나는 말을 부드럽게 못 할까?’ 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대답을 얻은 것이 바로 어느 책에선가 읽은 ‘노출신경’이란 말이었습니다. ‘아, 나에게는 노출신경을 건드리는 안목이 없구나!★왜 그럴까?’-그것이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고집과 잘못 배운 신앙관으로 꽉 막힌 사고방식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의 바로 이 모습을 보면서 저를 교정했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보세요.}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이게 바로 노출신경입니다.)
(16절)의 분노(=프로씨즘/ 발작을 할 정도로 마음이 격한 감정에 휩쓸리는 상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어느 순간 바울은 마음이 차분해진 겁니다.
그리고 (3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단을 만들 정도로 미신, 우상을 섬긴 것은 (알지 못하던 시대) 즉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전 부터 제 설교를 들었던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목사님, 40대 초반의 설교와 요즘 설교가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스스로 아세요?’--그래서 제가 그랬죠.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제가 맞춰볼까요? 40대 초반에는 (성경본문만) 말 했는데, 요즘은 (예화)가 많이 들어가지요?’
그랬더니 그분의 표정이 ‘아니, 알고 계셨어요?’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제가 전에는 설교 듣는 사람들의 노출신경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나는 전할 테니까 알아서 듣든지 말든지 그건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의 책임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인생의 노출 신경이 있는데 그걸 외면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행}이란 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리들을 야생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오리모양의 기구를 타고 어린 오리들의 비행을 돕는 소녀의 이야기가 그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같아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접근하는 것을 (노출신경)이라고 부릅니다.
신경이 노출되어 있는데 그걸 건드리면 아무리 덤덤한 사람이라도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어떤 분은 따뜻한 가정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어떤 분은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의 서러움이 있고, ✔어떤 분은 인간에게 당한 상처가 있고, ✔어떤 분은 죽고 싶은 삶의 절망이 있으며, ✔어떤 분은 자기 재능을 맘껏 펼치며,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꽉 차 있는 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열려면 그의 관심사를 건드려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화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조심조심 (노출신경)으로 접근할 때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바울이 이렇게 노출신경으로 접근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1. (24-25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시냐는 겁니다.
(1) (24절) 하나님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고, 또 천지의 주권자(=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을 사람 손으로 지은 어떤 집에 계시거나, 개념 속에 제한시키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2) (25절) 또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이 없으면 뭐가 부족하거나, 우리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엄청난 헌신을 해도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손해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열정을 갖고 봉사한다고 해도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허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3)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공급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공급으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 매일 성경 본문 (수24:2-13)을 보면, 계속 “내가”라는 말이 13번이나 강조됩니다.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으며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었노라 6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 열조를 홍해까지 따르므로 7 너희 열조가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가 목도하였으며 또 너희가 여러 날을 광야에 거하였었느니라 8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편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9 때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10 내가 발람을 듣기를 원치 아니한 고로 그가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 ★★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 내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
결론이 뭡니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차는 LPG차이기 때문에 (가스)가 떨어지면 아주 곤란해집니다.
눈금이 빨간 선 가까이 떨어졌는데도 충전소를 못 찾을 때의 기분을 아십니까?
특히 고속도로에서 그렇게 됐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졸이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충전소를 만나면 ‘아, 평안하다. 이제 안심이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우상은 인간의 섬김이 필요합니다. 귀신(조상귀신?)이 제삿밥을 못 얻어먹으면? 굶어서 자기 후손에게도 심술을 부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달래야 하고, 길들여야 합니다.
얼마나 못 얻어먹으면 심술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자존, 자족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무엇이 부족해서) 차에 가스를 주입하듯이 보충해드려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봉사가 뭡니까?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고, 하나님 주신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로 하는 겁니다.
1/10조는 뭐고, 주일 성수는 뭡니까?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내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 그렇게 고백하는 거죠.
심지어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난, 삶의 고통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사단이 주나요? (사단은) 자기가 우리에게 고난을 준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환란의 바람이 들어오는 구멍(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합니다.
고통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합니다.
            
(4) (26-27절)그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는 말은 (역사와 영토의 한계)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와 영토)지만, 개인적으로 말하면 (시간과 거주=부동산)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의 역사도 하나님 정하신 것이지만, 내 생명의 길이도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겁니다.
이 민족의 영토도 하나님의 정하신 것이지만, 한편 내 부동산(아파트)이 몇 평이나 되는지도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그 신을 인간이 만든 집과 신전에 거주의 한계를 정해놓은 아덴 사람들은 얼마나 착각을 한 것입니까?
2003년도에 (대장금) 이라는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 한 날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문 대대로 수라간에 물자를 대던 최고 상궁의 자리를 대물림하던 최씨 일족이 망하는 장면에 방영되던 날이었다고 합니다.--왜냐하면, 그게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씨가 똑똑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시대의 정신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을 좌우하는 분이 누굽니까?
내가 사는 것 같고, 내가 이룬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이곳에 살고 있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번 금요일 날, 김진희 집사님이 입원해 계시는 서울대 병원에 갔다가 오면서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퀵)서비스를 하는 오토바이 수십대가 자동차 사이를 곡예 하듯이 누비면서 달려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제 마음에 (나도 어쩌면 저렇게 퀵 서비스 배달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고등학교 때 바로 퀵 서비스의 전신이 자전거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연대와 거주의 경계)를 그렇게 정하시지 않고 변경하신 겁니다.
(27절)을 보세요.
그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인생을 뒤돌아보니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기 계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내가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내가 신앙의 열정을 품고 살았다면 그것도 여기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나와 함께, 내 안에, 나와 동행하며, 교제하며, 축복을 나누며, 내 일거수일투족을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2. (28-31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1) (28절) 창조주 하나님을 힘입어 사는 자들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안 믿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늘 싸웠고, 자녀들도 말썽만 피우니 살아갈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사에 불평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얼굴도 어둡고...말하는 것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사는 것이 지옥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하기를 이제 집을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맘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회당에 가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자기 마음속에 ‘너는 누구 거냐? 네 남편, 자식은 누가 주신 거냐?’
그래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이번에는 ‘그러면 누가 책임진다고 생각하느냐?’그래서 다시‘하나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하는데, 막 눈물이 나더라는 겁니다.
그런 깨달음에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지는지.....
어느 날 길에서 친구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얘, 니 얼굴 참 좋은데, 요즘 무슨 좋은 일 있냐? 남편은 괜찮아? 아이들도?”
그래서 그 집사님이 “아니, 그냥 그래.”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러니까 그 친구가 더 놀래더랍니다. 아니, 그냥 그대로인데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얼굴이 환하니? 이상하다, 얘.”
그래서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다 똑같지만, 내가 변했어. 나 자신이 변하니까 이래. 하나님이 책임지신데...이제 마음이 편하고 기뻐! 예수님이 내 남편과 아이들도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거든!”
그렇습니다.
세상 것으로 만족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시면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천국의 평안을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마치) 태아가 엄마 젖줄을 통해서 자라나듯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자라난 존재입니다.
태아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주는 겁니까? 엄마가 주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힘입어 살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셔야 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생명의 영양분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2) (29절) 또 우리는 (신의 소생)입니다.--그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바울은 아덴의 우상 앞에 한 사람을 세우고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보라! 이 우상들이 신의 소생인 너희 앞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가?!!’
‘너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드려다 보아라! 너희 존재의 신비 앞에서 잠잠 하라!’
어느 날, 가나안 농군 학교의 김용기 장로님이 반짝반짝 빛나는 나팔을 3개 사오셨습니다.
그는 광복 직후 의식구조가 낙후되어 있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낮에는 10대의 세 아들과 함께 황무지를 개간하며 중노동을 하다가 닷새마다 열리는 양평군의 여러 재래시장에 나가서 농촌 계몽 연설을 했는데, 그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까 궁리 끝에 마침내 비싸게 사온 나팔이었습니다.
아들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뭘 하시려고 나팔을 사오셨어요?’ ‘뭘 하다니? 너희가 불라고 사왔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불어요?’ 그러자 김용기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이놈들아! 나팔 만든 사람도 있는데, 너희는 남이 만들어 놓은 나팔을 불지도 못한단 말이냐?’
지금도 가나안 농군 학교에 가면 그들이 유창하게 불었던 나팔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소생입니다! 그렇게 하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상 앞에 엎드릴 수 없는 존재고요.
만약,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만약, 나에게 약점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교정하실 것입니다!
  그걸 안다면? 소심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내가 신의 소생이라는 것을 안다면, 아덴 사람들처럼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는....(다른 말로 하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걸리버 여행기)에 보면, 난쟁이들이 사는 소인국과 거인들이 사는 거인국이 이웃하고 있습니다.
그런대로 평화를 유지하며 사이좋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생각지 못한 일로 양국 간에 큰 전쟁이 발생해서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전쟁을 하게 된 동기가 아주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영토 분쟁이나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동기가 무엇이냐 하면, (삶은 계란을 어떻게 먹느냐?)는 문제였습니다. 삶은 계란을 먹을 때 계란의 넓은 쪽부터 껍질을 까서 먹을 것이냐? 아니면 좁은 쪽부터 껍질을 까서 먹을 것이냐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한쪽은 넓은 쪽부터라고 하고, 다른 쪽은 좁은 쪽에서부터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겁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 거죠!
신의 소생들은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해서 사람의 영혼을 죽이고, 가치 없는 것을 갖고 싸우고, 신경전을 벌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 땅에서의 자리다툼이나 하는 자들로 살기에는 너무나 존귀한 자들이고요.
적어도 우리는 시시하게 주도권 다툼이나 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신의소생이라면? 하나님을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30-31절) 그렇다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을 숭배한 것을 회개해야 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시시하게 살았던 것에 대해서 회개하야 하고, ★자리다툼, 주도권 다툼에 나도 모르게 말하고 듣고 했던 것을 회개해야만 합니다.
★적어도 나의 존재의 신비를 그렇게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켜 버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이 채우시고, 공급하실 것을 믿지 못하고 염려, 걱정, 근심에 싸여 살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돈이 없는 것도,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런 것들은 행, 불행의 척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었어도 그 복음을 받아들일 (가슴이 없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시간을 정하시고, 인생을 경영하시고 계시지만,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는 인생!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입니까?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힘입어 사는 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신의 소생된 존귀한 신분을 망각하고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 내 삶의 방향이 틀렸었습니다! 아! 내가 죄악 투성이 인 인간이었습니다! 제가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살았었습니다!’--‘오! 주님, 사소한 것에 존귀한 내 신분을 허비하며 살지 않게 하옵소서!’
여러분! 하나님을 알고 믿는 인생이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똑같이 한 하늘을 이고 살고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은 이 땅에서도 다르지만, 마지막에는 천국과 지옥을 상속받는 판이한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열어서 오늘도 내 인생을 주관하시며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천국의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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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 성령의 인도를 받는 빌립(행8장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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