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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ice
설교자료실
작성자 노재석
작성일 2007-01-12 23:04
홈페이지 http://sbjac.com
분 류 기타회원
첨부#1 행180122.hwp (0KB) (Down:54)
ㆍ추천: 0  ㆍ조회: 3284      
사도행전18장1-22절. 바울이 머리를 깎기까지
사도행전 18장1-22절. 바울이 머리를 깎기 까지.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저는 40살까지도 남의 차를 타고 가면서 스스로‘나는 절대 운전 못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왜냐하면 (운전자는)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1인 10역 정도는 해내야 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두 손으로는 동시에 핸들과 기어 변속을 해야 하고, ✔왼 발로는 클러치를 수시로 밟고, ✔오른 발로는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겁먹은 것은, 두 개 뿐인 눈으로 앞 도로 상황을 쳐다보기도 바쁠 텐데 (어떻게) 동시에 좌우 백밀러는 물론이고, 실내 백밀러까지 살펴볼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를 옆자리에 태운 채 운전을 하고 있는 그 분들은 (입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동시에) 라디오를 틀어 볼륨 조절도 하고, ✔에어컨까지 조절하니...그것이 어찌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신(神)이나 맥가이버가 할 수 있는 일이지 나같이 운동신경이 둔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도 그런 (낙심)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가?’라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만 낙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그런 낙심을 합니다. ‘내가 이 교회에 잘못 왔나?’
(언제 그렇습니까?)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비난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교회 직분자이면서도 성도다운 성품과 행동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이게 무슨 세상의 불신자들도 하지 않을 저질스런 언행과 성품을 드러내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보다는 자기 개인의 이익이나, 자존심에 매달려서 교회를 휘젓는 사람들을 볼 때, 세상적인 자랑이나 하고, 뒤에서 음모나 꾸미는 사람들을 볼 때, 자 기 주변에 사람들을 모아 세력화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낙심을 하게 되고, 교회 직분을 무슨 신앙의 계급장으로 생각하고 그거 못 얻을 까봐 전전긍긍하거나, 수작을 부리는 걸 볼 때 낙심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울에게도 낙심의 마음이 찾아 왔던 것 같습니다.
아덴에서 핍박을 받아 힘들고 지친 몸으로 고린도에 왔는데 여기가 또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어려운 일이 겹쳤다는 뜻으로 설상가상이라고 하죠.
✤우리 성도님들은 제 앞에서 우스운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어느 초등학교에서 국어 시험문제를 냈답니다. ‘어려운 일이 연거푸 겹쳐서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그리고 괄호 넣기로 ‘설( )가( )’라고 해놓았는데, 어떤 아이가 답을 쓰기를 이렇게 썼답니다.---‘설사가또’물론 정답은 설상가상(雪上加霜)입니다.
그럼, 고린도의 어려움이 무엇이었습니까?
지도를 보면, 이 고린도는 위쪽은 마케도냐고, 아래쪽은 겐그레아인데,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아주 좁은 통로(다리)처럼 생긴 곳으로 아가야의 주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은 에게해로 아시아와 마주 하고 있고, 왼쪽은 아드리아해로 이탈리아 로마와 마주 하고 있습니다.


이쪽 바다에서 저쪽 바다로 가려면 320km나 돌아가야 하는데, 뱃짐들이나 심지어 조그만 배까지도 운반해주는 오늘날의 케이블카처럼 배를 얹어놓고 운반하는 선가(배 선船 시렁 가架)가 있어서 이쪽 바다에 있는 항구와 저쪽 바다에 있는 항구를 연결해 주는 장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는 거대한 상업 도시가 되어서 (세계의 중앙시장)이라고 불리면서 (전 세계의 상품이) 쏟아져 들어왔고,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거만)했습니다.
또 2년마다 한 번씩 (올림픽) 경기가 여기서 열렸기 때문에 자부심이 대단하고, 아주 거만했답니다.
또 한 가지 고린도 사람들은 아주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도시 뒤에는 해발 600m의 (아크로코린트)라는 바위 언덕이 있었는데, 그 정상에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비너스 여신의 신전이 있어서, 1,000명의 여자 노예들이 그 여신을 섬겼는데, 밤에는 창녀가 되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틴어로 고린디아조마이(korinthiazomai)는 음란하다는 말이고, 고린디아스테스(korinthiastes)는 매춘부와 동의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고전 2:3)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 할 정도로 낙심했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 ‘이렇게 교만하고, 음란한 사람들에게 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낙심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8-22절)을 보면, 고린도 사역을 마친 뒤에 머리를 깎았다고 합니다.
(읽기)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두렵고 낙심했던 바울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하나님 앞에서 헌신을 다짐하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나실인의 서원과 관계가 있는데, 헌신을 다짐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헌신을 다짐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하며, 낙심하던 바울을 일으켜주고, 새로운 힘을 주었을까요?

1.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2-3절)을 보면, 바울이 낙심하고 있을 때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만남이 바울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기쁨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18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로 갈 때도 함께 갑니다. (24절)을 보면, 에베소에서도 아굴라 부부가 있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부부를 다시 언급합니다.
(롬16:3-4)을 보면,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고 합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바울처럼 고백할 수가 있을까요?
바울 곁에 있었던 아굴라 부부처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의식!--이것이 초대교회의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애정과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그 주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목회자와 평신 간의 관계와 얼마나 대조가 됩니까?
✤목회자들에게 ‘당신들의 목회에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목회자의 90%가 당회에서 장로들과의 관계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왜 이래야 합니까?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삶과 생명을 같이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회 안에서도 조화를 못 이루는데 어떻게 세계 복음화를 말하겠습니까?
◆(단추문화)와 (옷고름문화)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보는 것을 단추문화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단추를 달려면 반드시 다른 쪽에 (구멍)을 뚫어야 하니까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쪽이 (손해)를 보는 겁니다.
그렇지만, 옷고름은 서로 어우러져서 함께 의미를 만듭니다.
✤내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를 흠집 내면,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 생긴 피해의식 때문에 그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공동체 안의 사람들이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되어서 관계가 깨지고,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맛보아야 할 교회가 씁쓸하고 서글픈 사람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정말 헌신적인 믿음의 사람들을 교회 공동체 안에 심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 놓겠습니다. 마음 놓고 복음을 전하시오.’라고 말하는 헌신된 성도가 있었기에 당당했던 바울처럼......
저는 그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를 돌아보아도 그래요. 늘 말없이 지지해 주는 집사님들이 계시고, 항상 동역자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계시다는 것! 그것이 목회자의 행복이죠.

2. (5절)을 보세요.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서) 담대하게 증거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침체는 말씀에 붙잡힘으로 해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능력은 (말씀에 사로잡혔을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거기서 답을 얻고, 말씀이 내 삶을 주장할 때에 우리가 담대하고 능력 있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말씀이 삶의 방향타가 되어서, 말씀 때문에 용서하고, 손해 보는 선택을 감행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런 삶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씀을 붙잡게 된 것은 (실라와 디모데)를 만났을 때라는 사실입니다.
혼자였을 때는 말씀에 붙잡힐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좋은 동역자들, 마음을 내 보일 수 있는 동역자들이 도착하고,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을 때 사도 바울은 다시금 말씀에 붙잡혔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해도 마음에 기쁨이 샘 솟아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용기를 꺾어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소망을 심어주어요.
-전자는 비난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전자는 흠을 잡는 사람이고, 후자는 장점을 보는 사람입니다.
◆비난하거나, 흠 잡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지 말고, ✔소망을 심는 사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십시오!
교회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손을 마주잡고 기뻐하며 격려해야 하는 겁니다.
교회에서는 누군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말씀을 붙잡도록 소망을 심어야 하는 겁니다.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라는 작품을 보면 감격스러운 장면이 나옵니다.
아프리카에서 붙잡혀 온 노예인 주인공 쿤타킨테가 어느 날 주인을 따라 무도회장에 갖는데, 주인은 안에 들어가고 그는 밖에서 마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도회장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 나왔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정원 반대편 한 오두막에서 가냘픈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가 번쩍 뜨여서 그리로 찾아 갔더니 그 오두막에는 그 집의 노예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아프리카의 비슷한 지역에서 붙잡혀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순식간에 서로 얼싸안고, 말도 통하고, 하모니카 하나로 고향을 노래하면서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무도회장의 화려한 음악보다 오두막의 하모니카가 더 그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입니다.
마음이 통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화려함으로 자기를 치장하고, 가식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이 아니라, 하모니카를 불더라도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 우리 교회에 그런 하나님의 사람을 주십시오! 순수한 우정을 나누고, 사심 없이 동역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낙심하는 사람을 격려해서 세워주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에게 소망을 주는 동역자들과 교제하십시오!
우리 곁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축복이고, 격려입니다.
만나면 얼굴을 붉히고, 비방하고, 만남을 고통스러워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바울에게 실라와 디모데 같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에게는 여러분들이 실라와 디모데가 되고,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실라와 디모데가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말씀에 붙잡혀 담대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처럼 순수한 우정을 나누어 주시고, 실라와 디모데처럼 소망을 심는 동역자가 되어주십시오!

3. 마지막으로 (9-10절), 하나님께서는‘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십니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제가 보기에 이 말씀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놀라운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이 말씀을 보여주기 위한 부수적인 설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하고 음란한 사람들이 우굴거리는 고린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USA Today라는 잡지가 하버드대학의 역사와 사회신학 교수인 하비콕스(Harvey Cox)에 대해서 평가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반인들이 하버드 대학은 몰라도 하비 콕스는 알고 있다.)
격찬이죠? (그 유명 한 하버드 대학은 몰라도 하비 콕스는 안다?) 지나친 얘기 같지만 그만큼 하비 콕스가 오늘 이 세대에 중요한 분이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비 콕스는 30년 전에 (세속도시)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책입니다.
하비 콕스는 ‘도시 문명의 발흥이 우리시대의 가장 큰 특징’인데, 사람들의 생활이 부족에서 도시로, 그리고 기술지배 사회로 이동함으로써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겁니다.---(도시는) 사람들에게 통신, 이동성, 전통종교의 붕괴, 비인격성, 익명성, 통제 등을 가져오고, 경제적 무관심과 인종적 불이익, 실업, 주택문제, 교육, 범죄, 폭력, 가정의 붕괴, 사회의 긴장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1850년에는 100만 이상이 사는 세계적인 도시가 겨우 4개였는데, 1980년에는 225개가 되었고, 21세기에는 500개가 될 것이며, ✤1,000만 명 이상의 거대 도시는 1950년에 런던과 뉴욕뿐이었는데, 21세기에는 이런 도시가 23개나 되고, 멕시코시티는 3,000만 명, 상파울로와 도쿄는 2,500만 명의 인구가 될 것이며, 전 세계 인구의 1/2이 도시에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비콕스가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그 당시는 (신의 죽음의 신학)이라는 잘못된 신학이 유행했었습니다.-✔점점 과학이 발달하니까 이제 하나님을 안 믿고, ✔죄악이 가득한 도시에서는 하나님의 신비를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의 죽음)이라는 것이 유행을 했습니다.
◆그럴 때 (하비 콕스)가 나타나서 (아니다! 하나님은 세속 도시 속에 살아 계신다! 죄악이 가득한 그 세속 도시 한가운데에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가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확신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봐야만 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것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절망하고 낙심해서 (마치)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흔들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아니지...노재석이! 너는 어째 하나님은 보지 않고 사람의 말과 행위에 흔들리려고 하냐?’그렇게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리 믿음 없고, 세상적이고, 불평과 미움이 판을 치며, 음모와 편가르기와 구설의 다툼이 난무하는 중에도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죄악이 가득한 세속 도시 한가운데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한 복판에서도 자기 목적을 이루어 가시며, 교회를 교회되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성탄 발표회를 하는데 유치부 때문에 참 즐거웠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김태욱 전도사님의 아들 (현서) 때문에 모두 다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현서만 혼자 끝까지 아무 동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모든 아이들이 자 뒤로 넘어지는 장면에서 현서만 혼자 떡 버티고 서 있는 장면이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웃고 있는 어른들을 구경하듯이 뒷짐을 지고서 울지도 않고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얼마나 우스운지...나중에 현서에게 물어봤답니다.‘현서야, 너 왜 춤을 추지 않았어?’ 그랬더니 현서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야’라고 하더랍니다. 아니 이게 왠 말입니까? 사모님이 평소에 TV를 보면서 가수들이 나와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면 현서에게 ‘저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거야’라고 했었는데, 그날 현서의 눈에 그렇게 보인 거죠. 그래서 버티고 서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안 한다고....대단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현서 눈에는 그날 우리 모두는 다 타락한 주의 백성들이 된 거죠. ㅎㅎㅎ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하나님은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다는 걸 현서에게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1) (6-8절)을 보세요. 훼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은 예수를 믿고 (회당) 바로 옆집인 자기 집을 바울의 사역지로 제공했습니다.
(2) 그래서 드디어 (회당장 그리스보)의 온 집까지도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3) 결국 그들을 따라서 수다한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4) 나중에 (17절)을 보면, 또 다른 회당장 소스데네가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사람이 그리스보의 후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더 놀라운 일 아닙니까?
전임 회당장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 때문에 해임되었는데, 그 후임으로 온 또 다른 회당장마저도 예수를 믿은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1.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성도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곳곳에 누군가의 동역자가 되어 주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부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실라, 디모데 같이 다른 성도들이 말씀에 붙잡히도록 기쁨 주는 성도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수하고 열정적인 말씀의 동역자를 주십니다!
(저는) 제가 하는 사역에 100% 동의하고, 기꺼이 함께하되, 집을 이사하면서 까지 동역자가 되어주는 사람들을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 때문에 제가 말씀에 붙잡혀서 살게 된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면, 그들은 아주 진지하고, 진실하게 들어주고, 기뻐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이 시대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되기 위해 주님 앞에 절대의 헌신을 결심할 용의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기꺼이 자기 물질과 시간을 드리며, 주의 일에 동역자가 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어떤 하나님의 일군이 되고 계십니까?

2. 우리 이제부터 아무리 타락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집시다!
     
이름아이콘 testyourse
2008-04-28 13:09
 <a href="http://test.com">testyourself</a> [url=http://test.com]testyourself[/url] <a href=http://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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