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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ice
설교자료실
작성자 노재석
작성일 2007-01-14 22:16
홈페이지 http://sbjac.com
분 류 노재석
첨부#1 행190107.hwp (0KB) (Down:77)
ㆍ추천: 0  ㆍ조회: 3619      
사도행전19장1-7절. 의심스러운 신자
사도행전 19장1-7절. 의심스러운 신자.
◆강원도에 사는 사업가 김씨가 부산으로 출장을 가서 아내에게 인터넷으로 이 메일(e-amil)을 보냈는데, 실수로 그 메일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김 목사님의 주소로 발송되었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의 사모님은 그 메일을 받고는 기절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여보, 무사히 도착했소. 그런데 이 아래는 정말 뜨겁구려.”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받았다면 누가 장난을 한 줄로 알고 지워버렸겠지만,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주일 밖에 안 된 사모님은 목사님이 보낸 줄로 안 겁니다.--‘이 아래는 뜨겁다니.....’이것이 웬 날벼락입니까?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니, 그렇다면 그 사모님은 자기 남편 목사님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하지 못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목회를 하면서 보면, ‘정말 이 사람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구나!’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 이 사람이 과연 구원 받았을까?’라는 의심이 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배가 끝난 뒤에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저는 구원 받았나요, 못 받았나요?’라고 묻지는 마십시오. 대답하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목사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나님만 아십니다.
(다만) 의사들이 쓰는 말 중에 ‘의증’(疑症=의심할 의, 증세 증)이란 말이 있듯이 굳을 확, 확증(確證)은 없지만, 의증(=의심스러운 신자들)이 있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신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절)을 보세요. ‘너희가 믿을 때에(=이 말은 ‘너희가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이란 뜻입니다)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이 보기에 이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무엇을 보고 의심스러운 신자라고 생각했을까요?

1. 바꿔서 말하면, 무엇을 보고 참된 신자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오순절파와 은사주의자들)은 믿기만 해선 안 되고,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이 본문을 댑니다.
(다시 말해서) 오순절파(=한마디로‘순복음’)에서는 이 본문을 근거로 예수님을 믿은 뒤에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믿은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1) (행1:4-5)을 보세요.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이것은‘받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받으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성령 받으라!)가 아니라, (이미 약속하신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셨느냐?)고 묻는 겁니다.
즉 당연히 오셔야 할 성령께서 오셨느냐는 겁니다.
왜냐하면, (롬8:9)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고, (고전12:3)에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이 사람들은 (2절)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고 묻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성령의 존재자체를 몰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도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말하고,
또 세례 요한도 (자기 뒤에 메시야가 오시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성령이 오셨는지), 즉 (세례 요한의 예언이 성취됐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 이루신 완전한 구원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4절)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이 사람들이 신실하고, 정직하고, 열정도 있었지만, 예수를 몰라요. 아니 알기는 아는데, ✔예수 안에 있는 완전한 속죄와 구원의 은혜를 몰랐다는 것이고,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 영원히 내주하신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님의 평안과 안식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여전히 구약시대에 살고 있었던 겁니다.

(3) 그렇다면 성령님은 우리가 (믿은 뒤에) 오시는 겁니까? (믿을 때에) 오시는 겁니까?
제가 어떤 분의 책을 읽는데(=2007년 현재 한기총 회장인 박종순 목사의 사도행전), 이 분이 자꾸만  바울이 “너희가 믿은 뒤에(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본문은‘믿을 때에’라고 돼 있습니다.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성령론이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지금 믿은 후에 성령을 받는다고 하느냐?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고 하느냐에 따라서 (이게) 순복음이냐? 장로교냐? 가 갈라지고, 기도원이냐, 교회냐? 가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본문이 (믿은 후에)라면 여러분은 모두 다 순복음 교회나, 기도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헬라어로 “믿을 때에”라는 말은 pisteuvsante"(피스티우산테스)
인데, 이것은 과거분사 능동태입니다. 이것을 해석하면, 이미 지나간 과거의 행위가 지속되는 것, 즉 믿을 때와 성령을 받는 때가 같은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KJV)의"Have you receive the Holy Spirit since(=그 후, 그 이래) you believed?"가 아니고, (NIV)의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가 맞는 겁니다.
--대부분의 번역 성경이 (when)으로 번역하는데, (KJV)와 (AV)만 (since)라고 해요.
즉, 성령님은 (믿음과 동시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믿는 것과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같다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예수님을 믿느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확신이 있습니까?)
이미 믿는 사람은 성령이 그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참된 성도는 어떤 삶을 살까요?
뭘 보고 그 속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열린 우리당 (비례대표)의원인 장향숙의원은‘무 학력, 무직,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인권운동가,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여성장애인’입니다.
그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향숙 의원은 담대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믿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장 의원이 젊었을 때, 어느 날 한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장 의원이 들어서는 순간 집회를 인도하는 목사님의 눈이 커지더니 갑자기 장 의원의 다리를 붙잡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이 자매가 앉은뱅이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가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소서!”
◆그러나 장 의원은 기도를 마친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의 기도는 대단히 고맙습니다만 제게는 전혀 필요치 않는 기도였습니다. 기적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날 이후 장 의원은 “너의 두 다리를 멸시하지 않는다. 마른 나무에 새싹이 돋듯 너의 다리에 꽃을 피우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않고 떳떳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셔서 장애우와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장 의원을 사용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가 무조건 ((성령의 불덩어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6절)을 보세요. 바울이 세례를 받고 신앙을 고백하는 이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방언이 터지고, 예언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상태였지만 아볼로에게는 없었잖아요?
(오히려) 성령세례의 공통적인 현상을 (고전12장13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어떤 특별한 사람들, 예를 들면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세례란) 무엇입니까?
세례란, 성경 어떤 본문을 봐도 똑같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연합의 표시)라고 합니다.
(물세례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 하나(한 몸)가 된 것을 외적으로 보여 준다면,
(성령 세례는) 그것이 내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성령으로 세례 받은 신자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성품(예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성령의 별명이 보혜사인데, 이 보혜사는 영어로 comforter(위로자)로서 미국에서는 이불로, 영국에서는 고무젖꼭지로 사용된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이 그 속에 계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불로 덮는 것과 같은 성품이 생겨요.
그리고 성령의 역사는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입에 물린 고무젖꼭지와 같은 역사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격려)고, (위로)입니다.
(눅1:46-48)을 보세요.
마리아는 12-16살의 나이에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사람들의 (모진 험담)을 뒤로하고, 자기를 이해해줄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마리아는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댓가가 (조롱)과(멸시)뿐이니 ✔상한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마음이 무너져서 슬프게 울면서 엘리사벳에게 갔더니 엘리사벳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어서 와라. 마리아야!’--‘반가워요. 엘리사벳!’
그리고 엘리사벳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마리아야, 마음고생이 심하지? 그렇지만, 이제는 아파하지마라. (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야!)’
★‘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야!’(=옆 사람의 손을 잡고 외쳐보십시다.) ★
이 말이 마리아의 상한 영혼을 관통했고, 그녀의 고통을 치유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격려를 끌어내기 위해서 애를 썼나요? 아닙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격려에 칭찬으로 보답했나요? 그것도 아닙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격려하는 사람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눅1:46-48)을 읽습니다. “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가 찬양을 마쳤을 때에 영혼의 출혈이 멈추었습니다!
-인생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상처를 꿰맨 그 봉합선에는 (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리아를 치료하신 하나님의 이 치료제는 마리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날 우리는 다 하나님과 함께 세상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당신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외쳐주기를 고대하며 죽어가는 사람들 많습니다.
★우리는 엘리사벳이 (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말로 마리아를 도왔던 것처럼, ★상처받고 부서진 사람들을 찾아서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하여금 마리아 송가를 부르도록 하는 자극제입니다!
-우리는 엘리사벳의 사역(=격려의 사역)에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신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치유하십시오!
-영원을 보여 주십시오!
◆어느 외국 선교사님이 한번은 예배 끝에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 ’라고 축도를 하는데 ‘지금은’ 이란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요새는 ~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축도의 ‘지금부터 영원까지’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신앙 안에서 믿고 행하는 것들이 금세와 내세에 걸쳐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천국에 갈 때까지 통한다는 얘기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찬405장)도 처음에는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살리셨으니 그 은혜가 놀랍다’로 시작되지만 끝날 때는 ‘거기서 우리 영원히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인생은 영원을 바라봅니다!
축복을 말해도, 하루아침에 수억이 올라버려서 내 한 몸 누울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도 어려워진 현실의 축복, 이 땅의 축복이 아니라, 영원한 축복을 말합니다!
그렇게 영원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을 치유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2) 또 성령의 사람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면서 삽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자기가 구원을 받고 거듭났는지,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는지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확신이 없고, 신앙의 기쁨도 없이 교회 나오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구원과 은혜와 사랑의 확신을 심는 성령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외에는 다른 아무 관심도 없는....오직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만 모든 관심과 열정을 쏟는 성령의 사람, 어디 없습니까?
이것을 어떤 분은 구혼하는 그리스도인과 결혼한 그리스도인으로 구분했습니다.
구혼하는 사람은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상대방에게 잘 보여서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겠습니까?
어떤 성도들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주님에게 잘 보이여서 그분의 사랑을 얻어내려고 언감힘을 쓰는 피곤한 교인입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편안한 가운데서 남편의 사랑을 믿으며, 남편의 모든 것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모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평안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도입니까?
◆이번에(2007.1.8-10) 전서노회 학생 수련회에 3일간 강사로 갔었는데, 첫째날 부안면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나란히 마주 보는 식당 중에 한 곳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얼마나 맛이 없는지 먹고 나서 이랬습니다. ‘아, 시골 음식점, 정말 성의 없고, 맛 택이가 하나도 없구나. 내일은 절대로 부안면에서 먹지 않으리라.’ 그래서 둘째날은 흥덕에서 먹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게 흥덕에서 제일 깨끗해 보이는 집에서 먹었는데요. 이건 어제 저녁 보다 훨씬 더 맛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셋째날은 처음 먹은 맞은 편 집으로 갔습니다. 백반이었는데...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그런데 얼마나 맛있는지 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둘이 말하기를 (언제 시간이 나면 이 집에 다시 와서 이 백반을 또 한 번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먹고 나오면서 ‘아주머니 교회 다니세요?’ 그랬더니 ‘우리 집 양반이 오산교회 장로에요.’
그리고는 물어요. ‘교회 다니세요?’ ‘목사입니다. 저 위에 온누리 복지 타운에 강사로 왔어요.’ ‘그래요? 우리 애도 지금 거기 갔는데...’그래서 설교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하고,‘여기 부안면의 만나 식당 아들 손들어봐라!’ 그랬더니 고등학생 하나가 손을 드는데요. 그날 다른 애들은 다 졸아도 이 아이만큼은 절대로 졸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알아주니까요. 아니, 자기 집을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알아주는 목사의 설교를 어찌 졸면서 듣겠어요.
또랑또랑한 눈으로 끝까지 설교를 얼마나 잘 듣는지.......은혜를 받는 모습이 눈에 확 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안다 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하십니다.
◆어제(2007.1.13.토) 국민일보에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목사의 칼럼이 나왔는데, 제목이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사람’이었습니다.
(역대상4장9-10절)을 보면, 그 유명한 (브루스 윌킨스)의 (에베스의 기도)에 나오는 그 야베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윌킨스)의 말대로 야베스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래서 ‘너희도 악착같이 기도해서 기어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라!’ 그런 이야기일까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성경이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란,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관심과 시선을 받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름들이 아무 설명 없이 나열만 되고 있는데, 유독 야베스만은 그의 삶이 자세히 기록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야베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인생)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모아도 창조주 하나님의 주목을 못 받는 인생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교회가 아무리 부흥하고 커져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시시한 인생이 되고, 하나님의 시선을 못 받는 목사가 된다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입니까?
꿈과 목표를 상실한 이 세상에 살다보면 표류하는 인생이 되기 쉬운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시선을 받는 인생이 되자!)는 목표, (하나님의 시선을 받는 교회가 되자!)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 사람은 그런 하나님의 시선을 못 느끼고, 아니, 하나님의 관심과 시선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주하시는 인생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인생,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인생입니다.
그 마음속에 계속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확신이 자라갑니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는 하나님의 시선을 축복으로 느끼는 믿음이 자라갑니다.
결론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이 계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세상을 치유하는 격려자가 되십시오! 세상을 덮는 이불이 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마리아 송가를 부르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영원을 바라보며,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인생이 되십시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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